섹션 3_언더그라운드
Section 3 | Underground
독창적인 방식으로
철도를 그려내는 실험적 철도영화들
주류 영화의 궤도를 벗어난 철도영화를 소개하는 언더그라운드 섹션에서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삶과 이면의 목소리를 담은 2편의 영화를 만날 수 있다. <스틸 라이프>의 주인공 모하메드는 인적이 드문 철길 위에서 묵묵히 신호수의 삶을 살아간다. 그가 지키는 일상과 노고 속을 열차는 무심히 지나가고, 마침내 그에게 도착한 소식은 퇴직 통보다. 한편, 3년간 중국의 철도를 담은 J. P. 스니아데키 감독의 <철의 나라>는 민족과 빈부의 차이가 뒤섞인 열차 안을 극대화한 시청각적 감각으로 보여준다. 덜컹거리는 열차에서 출발해 빠른 속도로 미끄러지듯 질주하는 열차에 다다르면 관객들은 시간의 흐름과 기술의 발전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인간의 희망과 긴장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스틸 라이프
طبیعت بیجان, Still Life
소흐랍 샤히드 살레스 감독
이란 | 1974 | 93분 | 극영화 | Color | 12세이상관람가
자두르 보냐디, 모하메드 카니, 헤다야톨라 나비드 출연
제작_파르비즈 사야드 | 각본_소흐랍 샤히드 살레스 | 촬영_후샹 바하를루 | 편집_루홀라 에마미
열차가 드물게 지나는 이란 북부의 한 철도 교차로. 노년의 철도 신호수 모하메드는 적은 월급에 의지한 채, 밤낮없이 카펫을 짜는 아내와 함께 관사에서 근근이 삶을 이어 간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점차 아내의 카펫 디자인은 구식이라는 이유로 제값을 받지 못하고, 모하메드는 다가올 홍수로 철길이 물에 잠길까 불안하다.
✢ 프로그램 노트
소흐랍 샤히드 살레스는 이란 영화사에서 중요한 이름이지만, 국내에 처음 소개된 2002년 이후로도 ‘여전히 미지의 감독’으로 남아 있다. 그의 두 번째 장편 <스틸 라이프>는 33년 동안 철도 신호수로 일해 온 모하메드와 아내의 단조로운 일상을 담는다. 일한 햇수는 알아도 자신의 나이는 잊어버린 그는 열차가 지날 때마다 차단기를 내리고, 홀로 또는 혹은 누군가와 철길을 따라 걷는다. 집에 돌아온 그가 담배를 피우는 동안, 밤낮으로 카펫을 짜는 아내가 차를 내어주고 밥을 차린다. 단출한 살림살이의 단칸 방에는 열차의 소란이 없다면 정적만이 감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노부부의 삶은 서서히 침잠해 가지만, 멈출 수 없는 변화와 같은 속도로 열차는 그들을 무심히 지나친다. 그 흐름을 잠시 멈추는 것은, 열차의 존재는 안중에도 없는 듯 레일 위를 유유히 건너는 양 떼의 걸음뿐이다. 이란 정부는 삶의 비참을 담았다는 이유로 영화의 개봉을 금지했고, 감독은 독일로 이주했다.
소흐랍 샤히드 살레스(سهراب شهید ثالث, Sohrab Shahid Saless, 1944.07.28 ~ 1998.07.02.)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등 이란의 거장들이 존경하는 인물로, 원 컷 원 시퀀스의 데뷔작 <단순한 사건 A Simple Event >(1974)으로 주목받았다. 비전문 배우의 활용, 사실적인 롱테이크 등 20세기 이란 영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러나 정부의 검열로 인해 76년 독일로 이주했고, TV와 영화 스크린을 오가며 13편의 작품을 연출했다. 이후 제작 여건이 막히자, 미국으로 건너가 영화 교육과 작은 프로젝트를 이어가다 지병으로 사망했다.
철의 나라
The Iron Ministry
J. P. 스니아데키 감독
미국 | 2014 | 82분 | 다큐멘터리 | Color | 15세이상관람가
제작_J. P. 스니아데키 | 촬영_J. P. 스니아데키 | 편집_J. P. 스니아데키 | 사운드 디자인_에른스트 카렐
3년에 걸쳐 촬영한 중국 철도를 통해 움직이는 거대한 이동 국가의 내면을 포착한다. 살과 쇳소리, 덜컹임과 끼익거림, 빛과 어둠, 언어와 몸짓이 교차하며 수많은 이들의 여행이 하나로 직조된다. 사회적‧기술적 변혁이 빚어낸 설렘과 불안을 생생히 담으며, 곧 세계 최대 규모가 될 철도망 위에서 인간과 기계가 맺는 순간적 관계와 불편한 만남 속으로 관객을 몰입시킨다.
✢ 프로그램 노트
영화가 시작되면 스크린은 어둠에 잠겨있다. 달리는 열차의 쇳소리가 점차 가까워져 오면, 우리는 어느샌가 열차 안에 들어와 있음을 깨닫게 된다. J. P. 스니아데키 감독이 몰두하고 있는 감각적 민족지학은 ‘타자를 기록’하는 것이 아닌 ‘타자의 세계를 함께 감각’하는, 예술적이면서도 학술적인 실천이다. 영화는 첫 시퀀스부터 자연스레 관객을 열차 안으로 이끌어 천천히 둘러보게 한다. 시골 마을에서 출발한 열차는 금속이 부딪히는 소음으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잠에 빠져있거나 남은 노동을 이어가고, 현실과 비관, 그리고 희망이 뒤섞인 대화들이 칸과 칸 사이를 넘나든다. 어느 순간 열차는 300km/h가 넘는 속도로 마천루 사이를 질주한다. 열차 안에는 오로지 정적을 가르는 바람 소리만이 가득하다. 지정된 자리에 앉아 침묵을 지키는 사람들 속에서, 변화하는 시대의 풍경과 인간의 초상이 선명하다.
J. P. 스니아데키 (J. P. Sniadecki, 1979. ~ )
미국의 영화 제작자이자 인류학자. 학문적 관심으로 중국 철학을 접하며 1999년 처음 중국을 방문했다. 이후 2006년부터 감각적 민족지학 연구소Sensory Ethnography Lab에 참여하고 있으며, 시카고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다큐멘터리 미디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롱테이크와 비전형적 구성, 몰입을 통한 경험적 접근을 통해 분절된 현실을 재구성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