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더 레일 로드_이창동 감독

On the Railroad  |  Lee Chang-dong


평생 자신만의 길을 만들고 찾아가는 

시네아스트에게 헌정하는 플랫폼 섹션 안의 특별 코너

1954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사범대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했다. 1981년부터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쓴『전리戰利』가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소설가로 등단했고, 1992에는『녹천에는 똥이 많다』로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했다.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가고 싶다>의 각본과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했고,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백상예술대상 각본상을 수상했다. 명계남, 여균동, 문성근 등이 함께 설립한 제작사 이스트필름의 첫 작품 <초록물고기>로 감독에 데뷔하여 벤쿠버영화제에서 용호상 수상 등 국내외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1999년 부산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박하사탕>에 이어 <오아시스>(2002)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감독으로 평가받으며 ‘리얼리즘의 대가’라는 찬사를 받는다. 2003년에 대한민국 문화부장관을 역임하다 2004년 6월 영화계에 복귀한 후 <밀양>(2006)으로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배우 윤정희의 스크린 복귀작으로 화제가 된 작품 <시>(2010)는 칸영화제에서 ‘조용하지만 주제적으로 가장 완결된 영화’라는 평가를 받으며 각본상을 수상했다. 2018년 칸영화제 경쟁에 오른 <버닝>은 현지 외신에게 최고의 평점을 받으며 심오하고 세련된 영화 언어로 새로운 영화적 체험을 선사하는 작품으로 극찬을 받았다. 2022년에는 세계보건기구와 베이징현대예술기금의 의뢰로 단편영화 <심장소리>를 연출했다.

초록물고기
Green Fish

이창동 감독
한국 | 1997 | 114분 | 극영화 | Color | 청소년관람불가
한석규, 심혜진, 문성근 출연


제작_명계남, 여균동 | 각본_이창동 | 촬영_유영길 | 편집_김현 | 음악_이동준


이제 막 군대를 제대한 막동이(한석규)는 고향 일산으로 가는 기차에서 위기에 처한 미애(심혜진)를 구해준다. 일자리를 찾던 중 우연히 다시 만난 미애의 소개로 나이트클럽 조직 보스 배태곤(문성근)의 부하로 들어가 조직에서 일하게 된다.


✢ 프로그램 노트
이창동 감독의 데뷔작으로, 필름 느와르라는 장르적 형식을 빌어 한국사회의 폐부를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산 신도시 개발과 조직 세계의 폭력적 질서를 연결해 어두운 사회의 부조리와 도시화에서 소외된 인간상과 정체성 상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오프닝 장면은 갓 전역한 막동이가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여러 기차역을 지나며 보여 준다. 막동이는 완목 신호기가 보이는 철로를 따라 달리는 비둘기호를 타고 가다 경원선 신탄리 역에서 내려 불량배에게 복수한다. 고향집이 있는 역은 개통 초기였던 지하철 3호선 대곡역이다. 막동이는 황량한 대곡역 역사에서 어디로 나가야 할지 모르는듯 이정표를 보고 서있다. 그는 변모한 고향집 풍경을 바라보다 기차건널목을 지나 집에 도착한다. 영화 중반부에 ‘항상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하는’ 미애와 함께 잠시 내린 역은 지금은 사라진 경의선 운정역이다. 새로 건축된 거대한 아파트 단지와 아직 시골 풍경을 유지하는 막동이의 고향집을 한데 담은 대조적인 장면이 ‘초록물고기’의 주제를 잘 말해주고 있다.




박하사탕
Peppermint Candy

이창동 감독
한국 | 1999 | 129분 | 극영화 | Color | 청소년관람불가
설경구, 김여진, 문소리 출연


제작_명계남, 이노 케이코, 전재영, 우에다 마코토 | 각본_이창동 | 촬영_김형구 | 편집_김현 | 음악_이재진


1999년 봄, 마흔 살의 영호(설경구)는 오랜만에 열린 봉우회 야유회에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나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그는 높은 철교 위로 올라가 다가오는 기찻길로 뛰어들며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절규한다. 이후 시간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젊고 풋풋했던 시절의 영호의 과거를 보여 준다.


✢ 프로그램 노트
이창동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자 1999년 부산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되었다. 1999년 봄에서 시작해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독특한 형식이 달리는 기차를 통해 표현된다. 1980년 광주사태라는 폭력의 시간을 지나 도착한 열차의 최종적 시간은 스무살 갓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 영호와 순임이 박하사탕을 먹던 되돌아 가고픈 순수한 시절이다. 평범하고 순수했던 영호는 외부의 힘에 이끌려 어리숙한 군인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형사가 되어 고문을 하고, 사업가로서 주식 투기로 재산을 탕진하는 등 한국 사회의 모순과 병폐를 드러내는 인물로 변한다. 한국사회의 변모가 영호의 개인사적 변화를 통해 표현된다. 광주역 철로 변에 숨어 있던 여성을 살해한 이등병 시절의 영호는, 이 사건을 기점으로 더 이상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 이렇듯 영호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주변에는 항상 열차가 있으며, 열차 소리와 기적 소리가 울려 퍼진다. 한국 영화사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인 영호가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절규하는 장면은 충북 제천의 외딴 마을인 진소 마을을 지나는 철교 위에서 촬영되었다. 감독은 이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전국의 100여 곳을 답사하며 적합한 굴다리와 강가를 찾아냈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 등장하는 야유회 장면은 삼탄유원지에서 촬영됐다.


마스터스 초이스|Master's Choice

연연풍진
戀戀風塵, Dust in the Wind

허우 샤오시엔 감독
대만 | 1986 | 109분 | 극영화 | Color | 12세이상관람가
첸슈팡, 리티안루, 왕치엔웬 출연


제작_첸밍창, 슈쉰처 | 각본_주톈원, 우녠진 | 촬영_리핑빈 | 편집_랴오칭성 | 음악_임강


1965년, 열다섯살이 된 소년 완은 고향 광산촌을 떠나 도시의 인쇄공장에서 일을 시작한다. 소녀 후엔도 그를 따라 곧 도시로 와서 일을 배운다. 완과 후엔은 시골에 있는 가족을 부양하고 돈을 보내며 힘겹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생활한다. 하지만 완이 군대에 입대하면서 조금씩 서로의 길이 달라진다.


✢ 프로그램 노트
이창동 감독이 ‘기차영화 특별 추천작’으로 선정하여 상영되는 작품이다. 영화는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 기차의 시점으로 시작하여, 멀리 보이는 빛을 향해 질주한다. 초기 허우 샤오시엔의 작품에서는 기차가 자주 등장하며 중요한 정서적 의미를 지닌다. 어두운 터널을 네 번이나 통과하며, 기차 차단기의 붉은 등이 켜지고 기차가 도착하면, 소년과 소녀는 철길을 따라 집으로 향한다. 두 사람이 말없이 나란히 걸어가면 야외 상영을 위해 설치된 흰색 스크린이 바람을 안고 펄럭이는 모습이 보인다. 이렇듯 영화는 기차의 도착과 함께 시작한다. 광산에서 다친 아버지가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역이나, 도시의 복잡한 플랫폼에서 고향의 소녀를 기다리는 소년, 그리고 입대를 위해 할아버지와 함께 걷는 철길 등, 소년의 성장 여정이 기차와 결합해 표현된다. 삶은 기찻길에 비유되며, 터널은 삶의 어두운 시절을 상징한다. 광부였던 아버지는 갱도의 깊은 터널에서 다리를 다쳤다. 이 사건은 영화 중반 완이 텔레비전을 보며 떠올리는 플래시백으로 묘사된다. 완의 군복무 지역 역시 터널처럼 보인다. 전력이 부족해 수시로 정전이 발생하는 작은 마을처럼, 사람들의 삶도 고단함 속에서 깜빡거린다. 전쟁이 끝난 후 60년대의 가난한 시골 풍경은 한국과도 비슷하다. 시골에서 적당히 학업을 마친 아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올라가 공장에서 일하고, 시골에 있는 가족에게 돈을 부친다. 남자들은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고, 첫사랑과 이별한다. 영화의 제목 "바람 속의 먼지"처럼 지나간 시간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1987년 낭트영화제에서 최우수 촬영상 수상작으로,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성장 4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허우 샤오시엔(侯孝賢, Hou Hsiao-Hsien, 1947.04.08.~ )
1980년대 이후 에드워드 양, 차이밍량과 함께 대만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감독이다. 1947년 중국 본토 광동성에서 태어나 이듬해 대만으로 이주해 성장했고, 국립예술전문학교 영화연극과를 졸업했다. 조감독으로 활동하다가 1980년 <귀여운 여인>으로 감독으로 데뷔했다. 1983년부터 <펑쿠이에서 온 소년>, <동동의 여름방학>, <동년왕사>를 거쳐 <연연풍진>으로 이어지는 ‘성장기 4부작’을 통해 대만 현대사의 변화를 성장기의 아이들의 시선과 경험으로 표현했다. 1989년 <비정성시>를 시작으로 <희몽인생>, <호남호녀>로 이어진 세 편의 작품은 대만의 아픈 현대사를 개인의 삶을 통해 조망한 ‘대만 역사 3부작’이라 불린다. 2000년대에 들어서 지금의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밀레니엄 맘보>와 오즈 야스지로 탄생 100주년 기념작 <카페 뤼미에르>를 연출했으며, <자객 섭은낭>에서는 독특한 작가적 스타일의 무협 영화를 선보였다.